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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정치와 한국경제 ] 세 번째 그레이트게임 the Third Great Game

 

국제정치와 한국 경제 (2)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the Third Great Game)의 시작

by VIVITE LAETI

 

 

 

[1] 최근 몇 년 새 국제 정세와 경제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이 자국 내 반대를 무릅쓰고 안보법을 개정해 자위대가 해외에서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더 나아가 2016 7월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당인 자민당 계열이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는 2/3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면서 사실상 개헌의 문턱에 아주 가까워졌다. 여기에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긴장은 나날이 높아져만 가고 있다. 최근의 국제정세를 보면, 과거 1813년부터 100여년간 영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졌던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the first great game)과 양상이 비슷해져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렇다면, 최근의 국제 정세의 흐름을, 중국의 확장을 막고자 하는 미국의 총체적인 견제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 , 정치, 경제,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국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1900년대 초까지 영국이 러시아를 대상으로 벌인 게임을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하고, 1940-70년대까지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던 게임을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한다면, 이번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은 서방이 대륙 세력을 대상으로 벌이는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the third great gam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이번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의 주체는 미국이고, 그 상대국은 예전 러시아나 소련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벌어졌던 두 번째그레이트 게임에서 일본이나 한국의 경제성장은 공산주의가 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고자 했던 미국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공산주의를 대표하는 국가도 아니었고,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이미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데도 특별히 도움이 되는 국가가 아니었다. 미국의 관심은 공산주의의 맹주 역할을 했던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이었다. 소련은 1917 ‘2월 혁명 ’10월 혁명그 이후 이어진 러시아 내전(1917-22)을 거친 후 1922년에 정식으로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탄생하게 된다.

 

[3]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이념이 현실로 나타나고 그 이념을 반영한 국가가 탄생했지만, 서구 사회 특히 미국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이후였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뉘면서 북한에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했고, 동유럽에는 소련이 지지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속속들이 들어섰으며, 베트남이 프랑스와의 전쟁을 거치면서 1954년에 북쪽에 호치민이 주도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했다. 그러자 미국을 중심으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이념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여기에 위스콘신 주의 조지프 매카시(Joseph McCarthy) 상원의원이 1950년 공화당 당원대회에서미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나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이런 시대적 흐름에 불을 붙였다. 바로 미국 사회는맥카시즘'(McCathyism)으로 대표되는 반공주의 사회로 접어들었다그리고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 바로 아래인 쿠바에서 공산주의 혁명에 성공하고, 1962년에는 소련이 미국의 도시들을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비밀리에 쿠바에 설치하려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러한 미국의 반공주의는 1964년 통킹만 사건을 시작으로 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까지 이어졌다.

 

[ 맥카시(McCathy) 상원의원 ]

 

[4]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고자 했던 미국의 전략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끌면서 공산주의가 태평양 지역으로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았고, 쿠바는 공산화된 직후 바로 경제 제재조치에 들어갔다.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해, 경제적으로는 1948 마셜 플랜(Marshall Plan)을 통해 서유럽 국가들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군사적으로는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를 결성함으로써 소련의 확장을 저지하고자 했다. 이에 대응해 소련은 1955년에 자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방위동맹체인 바르샤바 조약기구(Warsaw Treaty of Friendship, Cooperation, and Mutual Assistance)를 결성하였다.

 

[5] 이렇게 확장되던 미국에 의한 공산주의 확산 저지 전략은 1991 12 25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해체를 선언하는 연설을 함과 동시에 모스크바 붉은광장 계양대의 소련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 삼색기가 올라가면서 최종 마무리되었다. ‘냉전'(Cold War)이라 불리던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이 50여년만에 끝나는 순간이었다.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고자 했던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은 100여년 동안 지속됐던 데 반해, 미국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으려고 했던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은 대략 50여년만에 마무리된 것이었다이후 미국은 중국이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2010년대까지 상대국이 없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누렸다.

 

[6] 상당 기간 미국에 대항할 만한 힘을 가진 국가가  나타나지 않다가 2000년대 들어 중국이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던 중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주의가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비효율성이 심각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중국 내부에서는 개혁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되었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만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바로 등소평(덩샤오핑)이었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의 비효율성을 극복할 방법으로, 내부적으로는 생산성을 향상하는 정책을, 외부적으로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의미로,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상관없이 중국 인민을 잘 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뜻)으로 대표되는 과감한 개방정책을 추진하였다.

 

[7] 중국 내부의 생산성 개선 문제는 ‘농업생산책임제라 불리는 제도가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면서 본격화되었다. 이 제도는 1978 12월 안후이성 평양현의 12농가가 중국 정부 몰래 도입했던 包 大包干(다바이간)에 그뿌리를 두고 있다. 다바이간 제도는 농가에 할당된 생산량을 책임지고 생산한 뒤 남은 생산물은 마을에서 농가들끼리 배분하는 것으로, 사유 재산 형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내 것이 생긴다는 생각에 농가들의 반응은 아주 뜨거웠고, 다바이간 제도는 소문을 타고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개인 소유를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주의 원칙상 초기에 중국 정부는 이 제도를 탄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덩샤오핑 체제 제 11 3중전회의에서경제발전에 집중한다.’는 결의가 채택되면서 이 제도는농업생산책임제라는 명칭으로 정식 도입되게 된다. 이후 중국의 농업생산성은 획기적으로 상승하였다.

 

[8] 중국의 개방정책은 1979 1월에 미국과 정식 수교를 맺으면서 본격화되었고, 2001 WTO에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중국의 개방정책은 실질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개방정책 도입 이후,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나라라는 점을 적극 활용하여 저렴한 임금을 기초로 한 제조업을 적극 유치하였고, 이후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서구 사회도 저렴한 공산품의 공급처로써의 중국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서구사회의 경제는 페트로달러의 본격적인 확산으로 부가 급증하던 상태였고, 이런 상태에서 중국의 저렴한 상품 공급은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소득이 늘어나면서도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는 상황을골디락스(Goldilocks) 경제라고 한다. 소득이 늘면 물가가 상승하기 마련인데, 물가가 오르지 않으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최근까지 이 골디락스 경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세계의 공장으로써의 중국이었다.

 

[9] 중국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성장할 때까지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중국이 성장하고 군사적으로도 중국이 미국에 대항할 만한 힘을 갖게 되자, 미국은 본격적인 중국 견제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최근 들어, 중국이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군사굴기(軍事堀起)를 시작하면서 미국의 견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2015 9 3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열병식은 그 정점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열병식은 1949 10 1일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선보였던 열병식 이후 66년만의 일로, 그만큼 중국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열병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중국은 아무런 힘도 없는 제2차 세계대전의 신생국가에서 미국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위치로까지 성장을 했다.

 

[10] 이제 미국은 중국의 확장 혹은 굴기(堀起)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고, 최근 들어 미국은 이런 필요성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중국 견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는 군사적으로 중국의 확산을 막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것이다. 군사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을 움직이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중국 경제의 붕괴를 이끄는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인 움직임은 표면으로 드러나 명확한데 반해, 경제적인 움직임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구체적인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모종의 움직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11] 군사적인 측면에서의 미국에 의한 중국 견제는 2015년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일본을 움직이는 것인데, 과거 영국이 일본을 움직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냈듯이, 이번에도 미국은 일본을 움직여 중국을 막으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먼저 1967무기수출 3원칙에 따라 금지돼왔던 일본의 무기 수출이 2014 4방위장비 이전 3원칙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다시 가능해졌고, 2015 4월에는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 기간 중에·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개정되었다. 이 개정안을 통해, 미국은 미국이 관여하는 국제분쟁에서 일본 자위대가 전세계를 대상으로 후방지원을 할 수 있도록 일본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대폭 확장하는 것을 허용해주었다. 이로써 일본 자위대는 한반도를 포함해, 전세계 어디에서나 미국의 요청이 있으면 군사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기존 방위협력지침에서는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일본 주변이라고 명시하여 자위대가 일본 영해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었는데, 이 제한을 미국이 풀어준 것이다.

 

[12] 아베 총리는·일 방위협력지침의 후속조치로, 2015 9 19일에 일본 내 반대를 무릅쓰고 안보 관련 법률 11개를 제정 혹은 개정하였다. 새롭게 제정 혹은 개정된 법률의 가장 큰 특징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이기는 하지만 자위대의 무력 사용을 허용한 점과 자위대의 활동 반경을 전세계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일본 자위대는 미군의 후방을 지원한다는 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시 미군의 용인 하에 독자적으로 무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주변국 및 우방국이 공격을 받아 일본이 존립을 위협받거나 자국민의 권리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존립위기 사태)에서 군사작전도 벌일 수 있게 되었다안보 관련 법률을 제·개정한 아베 총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헌법도 개정한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2016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개헌을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만약 아베의 의도대로 헌법까지 개헌하는 데 성공한다면, 일본은 방어 목적에 한정됐던 자위대 형태가 아닌 다른 침범할 수도 있는 전쟁을 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한보통국가가 된다.

 

[13] 그렇다면 일본의 이런 움직임들이 일본 독자적으로 가능했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철저하게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서 있었다. 자위대의 역할이나 작전 가능지역의 확대, 더 나아가 평화헌법의 개헌 등은 미국의 지지가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최근까지 미국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확장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 미국이 기존 입장을 바꿔 일본의 군사적인 확장을 적극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자위대의 역할과 작전 가능지역을 대폭 확대해주었고, 헌법 개헌까지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가정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전쟁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미국이 중국과 직접 전쟁하는 것은 피하고, 과거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을 움직여 중국과 전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미국의 의도 하에 일본이 움직이고 있다. 그만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이 빠르고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4]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까지 나타난 미국의 한국에 대한 입장은린치핀’(linchpin)이라는 용어로 요약될 수 있다. 린치핀은 수레바퀴 축에 꽂는 핀을 의미하는데, 외교적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동반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미국은 이 린치핀이라는 용어를 일본에 대해서만 사용하다가 2010 6G20 정상회의에서부터 한미 관계에도 사용하기 시작해 현재도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한국에 대해서는린치핀이라는 용어를, 일본에 대해서는코너스톤‘(cornerstone, 주춧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외교적 수사일 수는 있지만, 두 용어 모두 외교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동반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외부에 드러난 정황만으로만 판단해 본다면, 미국은 현재 한국도 일본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가진 나라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리적으로 보더라도, 중국 견제에서 한국이 빠질 수는 없어 보인다.

 

 

 

 

[15] 실제로 미국은 전체의 큰 틀에서 우리나라의 군사적인 힘도 재배치를 추진해왔다. 2007년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이 발표되었고, 당초 이전 계획도 없었던 부산에 있던 제3함대사령부도 갑자기 서해안 지역인 목포로 이전하였다. 더욱이 2016 7 8일에는 수년간 끌어오던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의 한국 배치를 갑자기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중국 견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각종 논쟁들, 예를 들면 전자파 유해성 논란이나 중국의 보복 조치 등은 사실 엄격한 의미에서 사드 배치의 핵심에서 벗어난 논쟁들이다. 사드 배치의 핵심은 미국이 중국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점이고,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국의 결정에 반대할 힘이 없다는 점이다.

[16] 하지만 일본을코너스톤으로 묘사하고 우리나라를린치핀으로 평가하든, 이번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에서 미국이 우리나라보다는 일본을 좀더 중요한 말로 취급하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일본이 우리나라에 비해 앞서 있다. 더욱이 지리학적으로도 일본의 중요성은 우리나라에 앞선다. 우리나라가 무너지면 일본이 위협을 받지만, 일본이 무너지면 태평양의 절반을 잃을 수도 있게 된다.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 일본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17] 그렇다면,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 번째 그레이트 게임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 첫 번째 그레이트 게임에서처럼 대대적인 전쟁으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두 번째 그레이트 게임에서처럼 상대국의 경제를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끝날 것인가국가간의 문제는 다양한 변수가 많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상황만 두고 본다면, 미국은 어떻게하든 중국과의 군사적인 대결은 피할 것이라는 게 조심스러운 추측이다. 지금의 움직임을 보면 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제문제로 소련이 무너졌듯이 중국 역시도 군사적인 충돌 없이 경제적으로 무너져 내리게 하는 미국이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가 아닐까 한다.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이 입을 피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은 과거 소련이나 일본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한 편으로는 일본과 한국을 활용해 중국의 군사적인 확장을 막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중국 경제의 붕괴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것으로 보인다. 과거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가 무너지면 군사력 또한 위축이 불가피해져 국가 전체가 힘을 잃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이 어떤 방식으로 중국의 경제를 붕괴시키려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다.

 

 

[18] 우리나라 경제 역시 미국의 전략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우리나라를 활용할 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적으로 나타난 것처럼, 정말로 린치핀(linchpin)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나라 경제는 여러 가지 나쁜 상황에서도 나름 선전하면서 충격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버리는 패에 포함된다면, 최악의 상황까지 갈 수도 있다. 일단,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금융상으로도 국제 자본이 움직이기 쉬운 환경을 가지고 있다. 활용할 가치가 높다는 뜻이다. 이런 정황은 다른 신흥국들이 외국 자본의 유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선전하고 있는 것에서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하지만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잘못 이해하거나 정세의 흐름을 잘못 판단할 경우, 필요에 따라 1997년 구제금융 당시와 유사한 충격이 올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 현재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 끼여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모두 우리나라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우리나라의 전략적 활용 가치가 아직까지는 높다는 뜻일 것이다. 가장 좋은 전략은 중립을 표명하는 것이지만, 과거 고종의 중립 선언이 아무런 영향력이 없었듯이, 힘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립 선언은 단순한 선언에 그칠 뿐이다. 형식적인 중립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현재로서는 미국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우리나라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당근과 채찍(carrot and stick)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가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나간다면, 단기적으로 외국자본이 빠져나가면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충격은 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한 번쯤 경제적인 충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경우든, 전략적으로 우리나라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마지막까지 활용할 것으로 보입인. 그에 따라, 경제적인 충격 역시 많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장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20] 앞으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많은 변동성을 경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변동성들은 경제적인 유인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목적으로도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경제 이론이나 기존 자료의 추세 등으로만 설명하기 힘들 수 있다. 돌려 이야기하면, 전통적인 경제 이론이나 모델 등에만 의존하게 되면 잘못된 전망이나 예측을 하기 십상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지금까지는 나름대로 경제 자료나 현상을 바탕으로 경제 방향을 예측하고 전망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돌려 이야기하면, 경제 데이터나 경제 이론을 바탕으로 가격 전망을 하거나 투자를 결정할 경우,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1]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 지도 큰 변수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이 미국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고, 대응 전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견제와 중국의 대응, 그 전략의 내용과 충격의 크기 등에 따라, 우리나라 경제 그리고 더 나아가 세계 경제가 큰 폭으로 출렁거릴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세계경제는 페트로달러의 위축이라는 수요 축소 현상도 함께 극복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아주 험난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이다.

[최초 작성: 2015. 10. 04]

[1차 수정: 2015. 10. 25]

[2차 수정: 2015. 12. 11]

[3차 수정: 2016. 01. 27]

[4차 수정: 2016. 08. 07]

[5차 수정: 2016. 08.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