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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광물자원 분포도 - 출처 : 통일부 ]

 

 

 

한국경제  -  북한 자원 잠재 가치 ‘6984조 원’


북한자원연구소 및 한국광물자원공사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투자하고 있는 북한 광산은 함경북도 무산철광, 함경남도 상농금광,

양강도 혜산청년동광, 평안남도 2·8직동 청년탄광, 황해북도 은파(아연)광산 등이다. 중국 기업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개발 잠재력이

높은 철광·금광·석탄·동광을 중심으로 투자하고 있다. 또 일부 중국 무역회사와 선양·옌볜 등에 거주하는 개인 사업가들이 북한의

소형  광산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다.

 

중국 기업들의 진출이 가장 많은 광산은 무산의 철광산과 혜산의 동광산이다. 무산광산은 북한 최대의 철광산으로 매장량이 17억 톤 이상으로 추정되는 세계적 노천 광산이다. 혜산동광산은 북한 최대의 동광산으로, 매장량과 광석의 품질이 높을 뿐만 아니라

중국까지의 거리가 4km에 불과해 운송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철광과 동광 외에도 중국 기업들은 개발의 경제성이 높은 금·석탄·몰리브덴·아연 광산 등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광산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소비재 중심의 제조업 및 유통업에 대한 중국 투자자들의 투자도 속도 있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 기업들은 2000년대 들어 건설자재·컴퓨터·식품 등 제조업 분야와 평양 시내의 백화점 및 대규모 유통업 분야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투자 규모에서는 중국 정부와 국유 기업이 주도하는 자원 개발 사업에는 못 미치지만 민간 기업들의 북한 제조업과 유통업 진출은

생각보다 빠르고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 투자자들은 자금과 설비, 기술을 제공하면서 북한 측 파트너와 합영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북한에 진출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북한에 투자해 성과를 거둔 분야는


▷컴퓨터(아침판타컴퓨터합영회사)
▷건물 지붕재 등의 건설자재(조선영초건재품합영회사)
▷가구(영광가구합영회사)

▷전기(평양전기기구합영회사·평양아명조명합영회사)
▷자전거(평진자전거합영회사)

▷담배(평양백산연초유한책임회사·나선신흥담배회사) 등이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이 북한에서 생산하는 소비재와 전기기기, 건자재 등의 경공업 제품은 북한에서 공급 부족으로 1990년대 중국 등 해외에서 수입하던 품목”이라며 “ 주민들의일상생활에 필요하고 수요가 많은 제품들이어서 투자 성과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 출처 : 산업자원부 / 대한광업진흥공사 ]

 

 


실제로 중국 정부는 2010년 창지투개발선도구에 2020년까지 약 2000억 위안(약 35조 원) 규모의 '초국경 경제협력지구’를 개발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국은 라진·선봉 등과 연결되는 대규모 교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라진·선봉지역과의 연계 개발은 2009년 11월 국가 사업으로 국무원의 승인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북한의 인프라 투자에 대한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월 16일 북한 경제특구와 이에 대한 인프라 개발 사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건설 물량이 60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북한 경제특구의 개발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를 냈다.

 

 

[ 출처 : 산업자원부 ]

 

 


북한은 라진·선봉, 황금평, 원산지역 등의 경제·관광특구 사업 추진에 이어 추가로 지난해 11월 각 도에 외자 유치 및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13개 경제개발구를 지정했다. 박용석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관광특구, 경제개발구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건설 물량은 약 6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만큼 건설 업계가 북한 경제특구 개발 동향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또 “북한 경제특구에 대한 남한 기업의 진출은 국내 산업단지의 경쟁력 약화에 따른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특히 라진·선봉 경제무역지대에 대한 진출은 동북아시아 물류 거점의 확보와 향후 한반도 종단철도(TKR)와 대륙철도 (TSR·TCR·TMR 등)의 연결을 위한 사전 사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이 분석한 인프라 건설 규모 60조 원은 경제 특구에 국한된 것이다. 즉 통일이 이뤄진다면 인프라 건설 규모는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국토연구원은 통일 전후 10년간 총 122조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약 100조 원 정도가 투자될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주택 건설을 제외한 수치다.

[ 출처 : 통일부 ]

 

 


연평균 12조 원으로 2013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1%에 달하는 금액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분야별로 도로와 철도 건설 등에 58조 원, 가스 등 에너지 관련 사업에 26조 원, 철도 건설에 24조 원, 산업 단지 건설 등에 24조 원, 항공 항만에 2조 원, 기타 28조 원으로 나타났다.

 

 

[ 출처 : 통일부 ] 

 


 

 

 "배터리 핵심광물 중국이 싹쓸이…한국도 빠른 대응 나서야"

전자신문 I  발행일 : 2017.09.17

 

중국이 이차전지 핵심광물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 호주 등 주요 광물 생산국 광산을 싹쓸이하고 있다. 한국이 우물쭈물하다

급성장하는 이차전지 시장에서 재료가 없어 대응하지 못하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해외 주요국가가 정부 차원에서 자원 확보에

나선 것처럼 우리도 민관이 협력해 광물자원 확보에 빨리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호주 니켈·코발트 광산 업체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스(Australian Mines)의 벤자민 벨 최고경영자(CEO)는 전자신문과 인터뷰에서

“중국이 작년 3월 테슬라 모델3가 발표된 직후부터 본격적 광물 자원 확보에 나선 것과 비교해 한국 업체로부터 처음 연락을

은 것은 올해 3월이었다”면서 “직접 해외 광산 사업성 검토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중국 업체에 계속 원재료 공급을 의존할

수밖에 없고 만약 중국에서 자국 산업보호에 나서면 향후 황산코발트를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스는 암석에서 니켈·코발트를 채굴해 정련 과정을 거쳐 황산코발트 상태로 만들어서 이를 배터리 제조사나

소재 업체에 이차전지 양극재용으로 판매한다.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코발트는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붐을 타고 최근

몸값이 급등하고 있다. 하지만 니켈이나 구리 원석 부산물로만 생산할 수 있어 공급 증가 속도는 더디다. 전 세계 코발트 매장량

절반을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 정세 불안도 계속되고 있다. 호주산 코발트는 그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벨 CEO는 “올해는 코발트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모든 시선이 호주 니켈·코발트 프로젝트에 쏠리고 있다”며 “지금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음 기회는 4~5년 이후에나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벤자민 벨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스 최고경영자(CEO)>

 


최근 호주 광물 자원 확보에 가장 적극적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정책적으로 전기자동차 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전기차

배터리에 쓰이는 핵심 광물 자원 선점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글렌코어 같은 대규모 니켈·코발트 프로젝트는 이미 중국

고객사에 모두 공급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안 마인스가 샘플 양산을 위해 건설 중인 데모플랜트 역시 생산 예정량 50%를

이미 중국 고객사가 예약했다.

 

한국은 중국으로부터 핵심 광물 대부분을 수입하고 있다. 리튬과 코발트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 우려가 대두되면서 국내에서도

광물 자원 확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대응은 중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다. 발빠른 대응이 필요한

이유는 프로젝트에 착수해서 실제로 생산이 이뤄지기까지 평균 5~6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광산 업체가 되려면 25개 허가 항목을

통과해야 해 채굴허가를 받기까지만 보통 4~5년이 걸린다. 이후 플랜트와 설비를 설치하고 채굴을 시작하기까지 다시 16~18개월이 걸린다. 때문에 중국 업체 투자도 가장 빨리 코발트를 생산할 수 있는 니어텀(near-term) 광산에 몰리고 있다.

 

[ 출처 : 전자신문 ]

 

 

벨 CEO는 상사보다는 배터리를 만드는 제조사가 직접 해외 광산 탐방에 나서 살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투자에 드는 비용이 5000만달러(약 570억원) 이상이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소재 업체보다는 자본력이 있는 대기업이 나서야

유리하다. 그는 “에이전시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개별 기업이 직접 사내에 자원개발팀을 꾸려 해외 광산을 찾아 하나하나 따져봐야

옥석을 가릴 수 있다”면서 “광산 인프라와 실제 생산되는 제품의 품질 검증은 물론 도로는 어떻게 나있는지, 전기와 수도 공급은 원활한지, 항만과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직접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는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대해 조사한 다음에 좋은 프로젝트를 찾아서 수요가 있는 기업과

연결시켜준다”면서 “정부가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도 필요하다. 그는 “영국은 정부 차원에서 프로젝트에 대해 조사한 다음에 좋은 프로젝트를 찾아서 수요가 있는 기업과 연결시켜준다”면서 “정부가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골드러시 ? ‘황금광시대 黃金狂時代'

[ 출처 : 국가기록원 ]

황해도 수안광산(遂安鑛山)은 노다지 금광이었다.
외국에서 들여온 광산 설비를 수안광산(遂安鑛山)으로 실어 나르는 소 수레들

 

 

 

금노다지타령 1939년

출처 :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 Sarah

 

 

 

 

 

[ 출처 : 구글이미지 ]

평안 북도 북진 운산 금광에서 일하던 한국인 노동자 모습

 

 

 

낮에는 금을 캐고, 밤에는 글을 쓴 문인들


1938년 소설가 채만식(蔡萬植)은 ‘일장기 말소사건’의 책임을 지고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물러난 설의식(薛義植)을

설득하여 함께 금광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일시적 유행으로 여기던 지식인들도 금광열풍이 점점 거세어지자

슬그머니 그 열차에 올라탔다. 이성을 찾자고 타일러도 시원찮을 신문기자, 법학자, 경제학자, 공학자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뜨거운 열기에 기름을 부었다.

 

 

펜 대신 곡괭이를 들었던 문인들 역시 부지기수. 「금따는 콩밭」,「노다지」,「금」등

금광 3부작을 집필한 김유정을 비롯하여 「영월영감」,「패강랭」같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긴 이태준 등이 그들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초 금광열풍이 엄습했을 때, 사실 제일 먼저 금

광으로 달려간 소설가는 팔봉 김기진이었다.


조선 프롤레타리아트 예술 동맹(KAPF)을 조직하고 이 땅에 사회주의 문예운동의 기틀을 다진

기진은, 사회주의를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일확천금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기막힌

아이러니를 실행에 옮긴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그 무렵 신춘문예의 당선작들도 모두 금광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를 다루고 있었다.  [ 출처 : 채만식문학관 ]

 

 

 

또 만주의 금값이 조선보다 훨씬 비쌌기 때문에 밀수출꾼들은 금괴를 숨긴 채 기를 쓰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넜다.

1933년 <신동아>지에 두 명의 노파가 금괴3개를 항문과 부끄러운 부위(?) 속에 감추고 꼬박 이틀을 견디다가 검거되었다는

그로테스크한 기사가 실려 있을 정도였다. 한편 어느 시대건 사람들의 욕망이 집중되는 품목에는 ‘투기’가 따라붙기 마련이다.

 

17세기 네델란드에서 튤립 투기가 기승을 부렸던 것처럼 황금광 시대에는 ‘금광 출원증’ 즉 금광개발권이 매력적인 투기의 대상으로

대두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천만원 정도를 들여 금광을 출원했다가 어리숙한 부자 한명 잘 만나서 출원증을 팔면 적게는 수십 배 많게는 수천, 수만 배의 횡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광 값이 치솟자 어떤 통 큰 사내는 20만원에 사들인 금광을 300만원에도 팔지 않고 버텼다고 하는 믿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황금광시대(黃金狂時代)| Sarah 발췌.

 

 

 

[ 출처 : 신동아일보 ]

 

금광왕 이종만.

무일푼으로 고생하며 28번이나 사업에 도전하여 실패한 뒤 1934년 영평금광을 개발하여 큰 돈을 벌었다.

굴지의 재력가로 성공한 이종만은 재산 거의 전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 1937년 이종만은 영평금광을 팔고 석별식을 가졌다. - 출처 : 신동아일보 ]

450원에 영평금광 출원증을 매입한 지 5년 만에 동조선광산주식회사에 155만원을 받고 매각했으니 3000배 이상의 수익을 낸 것이다.

 

 

 

 

[ 출처 : 국가기록원 ]

조선의 사금체취선

일제는 조선의 금광을 탈취했고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세계 5위안에 손꼽히는 금광을 보유하던 나라였다는 기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