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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에 필요한 썸, Something/국제동향

[박정희 시대의 국제 정세]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건국과 부국강병

 

 

 

 

 

 

이미지출처. 김광성作

 

 

 

 

 

 

 

 

 

 

 

 

 

 

 

 

     "   

 

 

 

  우리나라 역사상 우리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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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입니다.

 

 

 -DR.이춘근-

 

 

"

 

 

 

 

 

 

전쟁, 총, 칼, 대포, 공포스런 폭격기,

어마무시한 탱크가 도심속을 마구

 

휘젓기를 바라는 사람은

지금도 예전에도 없을것이다.

 

역사속에 전쟁이 전혀 없던 평화의

시절은 잠깐 동안 있었지만

 

전쟁준비를 하지않았던 국가나 부족은

없었다.

 

 

 

 

나는 전쟁세대도 일제를 겪은 사람도 아니지만

환경상 어른들 틈에서 거의 늘

6.25전쟁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야 했다.

 

 

일제 강점기를 겪으신 어른들 중에

미안하게도 일본사람들을 나쁘게

이야기 하시는 분들은 없었는데

 

예를 들면, 외갓집 건너편에 살던 일본인 가족들은

딸아이가 17세가 되면 부잣집에 식모살이를

보낸다거나, 각종 핸드메이드 자수 옷을 만들거나

 

편물을 짜거나 스웨터 짜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는 했고 아주 예의가 깍듯해서

각별히 친하게 지낸 분도 계셨더랬다.

 

 

 

나는 친일파도 아니고 부잣집에서 자란사람도 아니다.

유난히 일제를 겪으며 격동의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많은가본데 내가 알기론 그분들은 모두

이젠 이세상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도 일제시대를 지독하게 겪은

중년들이 많은 걸까.

 

 

내나라 국기를 짓밟는 것은 싫고

내가 남의나라 국기를 과거사 들추며 찟고 밟고

하면 그것은 온당한 행위인가.

 

 

도데체 국경일날 태극기 다는 것은 고사하고

현충원이나 동작동에 방문하는 사람은

몇명이나 되는가 말이다.

 

국가유공자를 제외하고는

... .

 

 

 

일제시대를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도 그렇다.

과거사를 가지고

 

물고 늘어지며 주구장창 인신공격을 해도

괜찮다는 논리는 어디서부터 시작하는걸까.

 

 

일제 강점기 일본이 잘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 즉 원인과 과정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고 무조건

 

이것이 이랬으니까.

이것이 이렇게 된것이다. 라는

논리는 사적으로는 유효할지 몰라도

 

공적으로는 부족한 부분, 헛점이 많아

타인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국제화시대, 글로벌경쟁력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가 돼버리고 만다.

 

만일, 이미 누군가 독도를 일본에

돈받고 팔아먹어버렸으면

어쩔텐가?

 

그러고도 모자라서

일본의 유명한 야쿠X들을

등에 빽으로 업고 유명 대학을 돌면서

 

한 번 강의 하는데 천만원씩 받으며

떵떵거리고 살았다면 어쩔건가.

 

당시 우리국민들 어떻게 힘들었는지

기억은 나는거임?

 

 

이건 어디까지나 만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예를 들어가며 말할 수도, 거짓을 말할 수도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이자 목사님이시던

 

많은 사람들이 존경에 마지않는 한 분이 계셨다.

 

 

 

 

1950년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 했을때

 

그때 이분은 아직도 새파랗게 젊으셨었다.

 

 

 

 

 

 

 

 

 

출처.조선일보

 

 

 

 

 

만해. 한. 용. 운.선사.

 

 

한국전쟁으로 산떠미처럼 쌓여가는

젊은 시체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하느님은 없다."

 

 

그길로 머리를 밀어버리시고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자 생활을 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도우셨다.

 

머리를 깎아버릴때

한 올도 남지 않고 밀어버렸을때

그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들 중 몇명이나 될까.

 

 

 

이분을 왜 추앙하는가.

 

그마음 헤아려 보기라도 하고 존경하고 있는 걸까.

아, 물론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면

내 실수이고.

 

 

 

 

 

그다음.

 

 

수월대선사, 출처.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의 유명한 판사님 사모님의 병을 고치시고

중생들의 불치병을 고치시다가

열반하셨다.

 

이분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수도

내생각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일자 무식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끼니도 못때우면서 노모를 모시던

나뭇꾼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를 버리고

수행에 나서서

 

많은 독립군과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되고

득도한 힘으로 잠을 주무시지 않고

 

온종일 짚신을 삼아

우리민족이 쫓겨가는 길목에 온산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으셨고

 

밤을 지새우며 밥을 짓고

소금만으로 요즘 젊은 친구들

좋아하는 원조(?) 오니기리를 만들어서

 

새벽같이 산길마다 다니시며

우리 민족의 배고픔을 달래주고자

주먹밥을 나눠주시곤 하셨고

 

부상자들을 치료하셨다.

 

 

증거있냐구요?

 

 

 

출처.인터넷도서 예스24

 

 

 

 

 

 

 

수월대선사께서는

 

한국전쟁 그리고 이후 가장 최근까지

현존하셨던 도인이십니다.

 

 

몸은 고스란이 곱게 놔두시고

고무신을 머리에 얹은채,

홀연히 영혼만 ... .

 

 

 

이분의 발자취를 찾으러

엄청난 기회비용을 희생하고

 

자신의 명예를 버리셨던

 

대한민국 전 검찰총장님께서 직접

수년에 걸쳐 집필하신 책이니

 

글 한자 써서 세상에 내세울것 없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황송하게

또 죄송한 마음으로 읽고 또 읽는

호사를 누린 책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출처.DR.이춘근

 

 

 

 

 

 

 

 

서울은 이춘근박사님 말씀대로

이렇게 점령당했다.

 

눈앞에서 피를 튀기며 죽는

친한친구. 형제, 자매, 부모, 동네사람들... .

 

 

나는 본적이 없지만

우리가족을 포함에 실제로 겪으셨던

분들은 아직 살아계신 분들이 많다.

 

 

 

 

 

 

 

 

 

 

출처.DR.이춘근

 

 

 

 

 

 

 

지금 우리가 변방의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여

강제로 축출되어 간다면 더구나 나이가

 

십대이거나 이십대 초반이라면

그나라에 가서 이렇듯 지게지고

총칼들고 싸워 줄 수 있겠는지.

 

군대가는거 좋아하는 사람없으니

 

나도 군대는 정말 시르다... .

 

 

 

.... .

 

 

 

 

 

 

 

 

 

출처. DR.이춘근

 

 

 

 

 

 

 

 

 

 

내가 본것만 이야기 하자면

 

 

이렇다.

 

 

 

 

 

 

 

 

출처.뉴데일리뉴스

 

 

 

 

 

 

 

 

국제화시대, 외교부를 축소해서

산자부 덩치를 키웠다.

 

 

무역업무를 보는 보잘것 없는 나같은

사람이 아주 별볼일 없는 컨테이너 수출선적하는

절차나 원산지관리(HSCODE)에 솔찬히

 

불편함을 겪으며 온갖 우왕좌왕으로

시간낭비하며 딜레이 벌금물고 손해를 보면서

 

욕까지 바가지로 먹으며 사는 맛은 죽는 맛과

아마 비슷할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

(아직 안죽어봐서 죽어본다음 정확하게

증거를 보여드리겠슴돠)

 

 

하물며 외무고시 준비하면서

온갖고생 감수하던 사람들은?

 

사명감으로 일하던 외교통상부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요.

 

울면서 청사를 나가서 어디로 ...?

 

 

 

제가 감히 누구를 욕하겠습니까

 

욕하자는게 아니라

더이상 나는 내가 아니여야하는

상황에서 그런 위치에서

 

무얼 생각했단 말입니까.

 

 

선진국의 국가원수도 아니고

국가의 군부대 장군에게

 

이승만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고개숙이고 무릎꿇고 그들의 비위를 마추었죠.

 

어떻게 아냐구요?

 

이건 이야기가 길어지니 나중에...

 

 

길지 않은 시간전에 대통령이었던 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맹박이라 부르며

감옥에 가두었죠.

 

감옥에 갈만 하니 가셨겠죠?

 

 

 

 

그런데 우리 이러고 살지는 말기를 바래요

 

 

열살을 갓넘은 소년은

홀어머니와 함께 바닷가 근처에 살았습니다.

 

먹을것이 없어서

어머니와 소년은 일주일을 굶었고

소년은 어머니를 위해

 

동네주변을 돌면서 식량(?)을 얻으러

다녔지만 [나쁜새끼]라면서

아무도 쌀 한 톨 나누어 주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생각이 포항제철에 멈췄어요

그래서 포항제철에 가서 먹을 것을

얻으려고 했지만 경비아저씨 선에서

쫓겨났죠.

 

 

그다음 어케 되냐.... .

 

포항제철사람들로부터 나오는 돈으로

먹고살만한 택시기사 아저씨께서

이소년을 발견해서

 

목숨을 건졌어요.

 

 

히틀러는 미술선생이

 

[그림에 졸라 소질 없는데 관두지?]

 

그말에 미치광이가 됐구요.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위를 잘 모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야, 그놈이 죽을줄은 몰랐는데

 

 

때리다 보니까 죽었다.]

 

출처. DR.이춘근

 

 

 

 

 

 

 

 

판사. 사람을 왜 죽였습니까?

 

피고. 저새끼가 자꾸 째려보자나요.

 

판사. 죽은사람 선천성 사팔뜨기 였습니다.

 

[2004.서울중앙지법에서 직접 듣고 기술함]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건국과 부국강병 2부_박정희 시대의 국제 정세 :
이춘근 박사,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설교,

강해, (2018. 5. 6)

 

https://youtu.be/54f7SctIMSA

 

 

 

 

 

 

출처. 북아메리카인디언-에드워드커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