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 Review
경제성장의 본질 (19)
화폐가치, 물가, 그리고 금리
by VIVITE LAETI
[경제성장의 본질 (19) 화폐가치, 물가, 그리고 금리]
[1] 경제성장을 요약하면, 부(富)가 늘어나는 부의 성장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화폐는 우리가 주변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부(富)의 한 형태에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 일상에서 화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폐가 우리 일상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에도 화폐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이 무엇인지, 화폐가 무엇인지 관심 없고, 단지 돈이든 화폐든 많았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만 가지고 있다.
[2] 화폐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부의 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화폐도 일반 상품과 동일하게 수요와 공급의 영향을 받는다. 화폐의 공급이 늘어나면 화폐가치 하락하고, 화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 화폐가치가 상승한다. 화폐의 수요과 공급 변화에 의한 화폐가치의 변화는 본질적으로 풍년으로 쌀 공급이 늘어나 쌀값이 떨어지거나 계란 품귀 현상으로 계란 가격이 오르는 것과 차이가 없다. 본질적으로 화폐도 일반 상품과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상품의 경우에는 수요과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가격’이라 부르는 데 반해, 화폐의 경우에는 ‘금리’라고 부르는 것에 차이가 있다. 즉, 상품의 가치는 ‘가격’으로 결정되고, 화폐의 가치는 ‘금리’로 결정된다. 시장에서 아이폰이 높게 평가된다는 것은 아이폰의 가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시장에서 중국산 전자제품이 낮게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해당 제품의 가격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화폐의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은 ‘금리’가 오른다는 것을 의미하고,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금리’가 내려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금리가 화폐의 가격이 된다.
[3] 경제에 위기가 오면 시장에 돈이 귀해지면 금리가 급등하는 일이 벌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경제에 위기가 오게 되면, 기업은 도산 가능성이 올라가고 가계는 현금을 확보하려고 애를 쓴다. 여기에 기업의 파산으로 은행들의 대손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적자에 시달리기 시작하고, 여기에 뱅크런까지 일어나면 은행 자체가 파산 위험에 놓이게 된다. 화폐의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턱없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화폐의 시장가격인 금리는 오르게 된다. 돈을 빌려주었다가 떼일 위험이 증가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프리미엄까지 붙어, 시중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프리미엄’으로 결정되면서 급등하게 된다. 따라서 위기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위험에 따른 프리미엄도 급등하기 때문에 금리는 더더욱 빠르게 상승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 상황인데 금리까지 추가로 인상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 급등하는 시중 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어야 한다. 시중금리를 안정시키는 수단은 간단하다. 화폐의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추고, 화폐 공급을 늘리면 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권한은 중앙은행들이 가지고 있으므로, 중앙은행들은 기준금리를 내려 시중금리를 낮추려고 한다. 화폐 공급 결정 권한은 재원이 종류에 따라 공급 주체가 중앙은행과 정부로 나뉘는데, 정부가 투입하는 자금을 ‘공적자금’이라고 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하는 자금을 ‘유동성 공급’이라고 한다. 따라서 위기 시가 되면,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중앙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형태로 위기에 대처하게 된다.
[4]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동일한 상황이 벌어졌다. 리먼 브라더스(Lehman Brothers Holdings Inc.)가 2008년 9월 15일 약 6천억 달러($613 billion)에 이르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몇 개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부도 위기에 놓이게 되자, 투자한 돈을 잃을 것을 두려한 사람들은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고 이는 순식간에 돈 부족 사태로 이어졌다. 만약 그냥 두었다면,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의 상당수가 부도 위험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물론, 금리도 뛰었다. 바로 연방준비은행(연준, FRB)과 미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했다. 연방준비은행은 2007년 5%가 넘었던 기준금리를 2008년 12월 0%대로 낮추었고, 미국 정부는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을 국유화함과 동시에 2,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우리나라에서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역할을 하는 기관이 바로 주택금융공사이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씨티그룹에 투입된 450억 달러를 포함해 총 7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1년 GDP가 1.2∼1.5조 달러 정도 된다.)
[5] 하지만 금리를 0%대로 낮추어도 시중의 유동성 부족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투입하는 공적자금으로도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이에 다시 연준이 개입해 양적완화(QE: quantitative easing)를 실시하였다. 양적완화는 미국 정부에 의한 공적자금과 달리,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연준이 매입하는 형태의 자금 투입을 의미한다. 대신, 연준은, 정부와 같이 세금과 같은 수입원이 없기 때문에 새롭게 화폐를 발행해 채권을 매입하게 된다. 공적자금이 세금을 기반으로 한 정부의 돈이라면, 양적완화는 아무런 기반 없이 연준이 달러를 인쇄해 조달하는 돈이 된다. 따라서 양적완화 규모는 곧 새로운 화폐가 시중에 그 금액만큼 풀렸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연준은 양적완화를 완전히 중단하기까지 대략 3.5∼4.0조 달러를 시중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기 기간 동안 시중에 새로운 달러 공급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뜻이다.
[6] 금융위기를 맞아 미국은 기준금리 인하로 자금 조달 비용을 낮추고, 공적자금 투입과 양적완화로 화폐를 공급함으로써 시중금리를 적극 낮추었다. 시중에 화폐 공급이 늘어나자 돈의 가격인 금리도 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장이 안정된다고 판단되었을 때, 연준은 테이퍼링(tapering: 양적완화를 갑자기 중단하는 것이 아닌, 점진적 축소과정을 의미한다. 2013년5월 23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 준비 제도 의장이 의회 증언 도중에 언급하면서 유명해졌다.)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양적완화를 중단하는 출구 전략(exit strategy)를 채택하였다. 출구전략은 양적완화의 규모를 축소하는 것에 더해, 시중에 풀린 달러를 흡수하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양적완화 중단 이후 연준이 금리를 인상한 것도 바로 출구전략의 연속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7]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출구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양적완화를 계속 사용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수요과 공급에 의해 금리가 결정되는 상품적인 특성 외에도, 또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화폐는 일반 상품과 달리, 다른 상품의 거래에 활용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령, 커피는 시장의 수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커피가 다른 상품의 거래에 이용되지 않기 때문에, 커피 공급이 늘어 가격이 하락하면 그것으로 끝이 난다. 즉, 커피 시장 내의 수요과 공급의 변화는 커피 시장 내에서 끝난다. 하지만 화폐는 그렇지 않다. 시장에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화폐의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는 내려가지만, 그와 동시에 거래에 이용되는 화폐의 가치도 떨어진다. 이전에 커피 한 잔에 1,000원 하던 것이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서 1,200원이 오르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두고 가격이 올랐다, 혹은 물가가 올랐다, 라고 이야기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이것은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에 해당된다. 따라서 시중에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하나는 화폐 공급량 증가로 화폐의 가격인 금리가 내려가는 현상이고, 다른 하나는 화폐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이다. 즉, 위기 상황에서 유동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폐 공급량을 늘리면, 금리가 내려가는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화폐 가치가 하락해 물가가 급등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8]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화폐가 가지고 있는 구매력, 즉 무엇을 살 수 있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동일한 금액의 돈으로 이전보다 더 적은 물량밖에 사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100달러로 100개를 살 수 있는 상품이 있는데,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이전과 동일하게 100달러를 지불했음에도 100개를 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폐가치가 5% 떨어졌다면, 동일한 금액으로 95개밖에 살 수 없고, 10%가 떨어졌다면 90개만 살 수 있다. 이전과 동일한 물량을 사려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 화폐가치가 5% 하락했다면, 이전처럼 100개를 사기 위해서는 105.3원을 지불해야 하며, 10%가 떨어졌다면, 111.1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화폐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은 동일한 수량을 사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것을 일반적으로 물가가 올랐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화폐가치 하락률은 물가상승률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9] 그런데 화폐의 가격에 해당되는 금리와 화폐가치 하락과는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금리와 화폐가치 하락률과의 관계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금리는 적어도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높아야 한다. 즉, 금리는 화폐가치가 하락하는 비율보다 높거나 적어도 같아야 한다. 왜 그럴까. 예를 들어, 금리는 5%인데 화폐가치는 10%가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하고, 여러분이 은행이 100달러를 저축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1년 후에 원금과 이자를 합쳐 105달러를 받는다. 그런데 그 사이 화폐가치는 10%가 하락했으므로 이전에 100달러면 살 수 있던 상품이 이제는 110달러가 되어 있다. 따라서 여러분은 동일한 상품을 1년 후에는 살 수 없게 된다. 여러분은 가만히 앉아서 물가 상승에 따른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축을 오래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은행에 돈을 저축해 손해를 볼 필요가 없으므로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물건을 산다.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물건을 사기 시작하면, 은행은 돈 부족 사태를 맞게 되고, 상품 가격은 전반적으로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돈을 은행에 묶어두고 급등하는 물가를 잡으려면, 금리를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상품시장, 즉 실물 시장으로 뛰어들어 시장은 순식간에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화폐가치는 더 떨어지고, 물가는 더 오르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오면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인상하는 조치를 취한다.
[10] 이것을 그림으로 설명하면, 금리를 r이라 하고, 화폐가치 하락률을 p라고 해보자.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금리와 화폐가치 하락률 사이에는 r≥p과 같은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초기 금리가 r₀이고 화폐가치 하락률은 p₀이며, 시장은 안정돼 있다고 해보자. 따라서 r₀≥p₀가 된다(a점). 경제 위기 등의 이유로, 금리를 낮추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해보자. 그러면 공적자금을 투입하든 양적완화를 실시하든, 화폐 공급을 늘려야 한다. a점에서 화폐 공급이 늘어나면 금리는 r₁(b점)으로 내려간다. 이때까지는 금리가 여전히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높기 때문에 화폐가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화폐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화폐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p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양적완화 등을 통해 화폐 공급이 더 늘어났다고 해보자. 그렇게 되면, 시장금리는 r₂(c점)까지 내려가게 된다. 하지만 금리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까지 내려가면 r₂<p₀가 되면서, 저축을 할수록 손해를 보는 일이 생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사람들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여 실물을 구입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화폐가치는 더욱 떨어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아래 그림에서 p₀에서 p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지 않으면, 화폐가치 하락률은 더욱 커져 최악의 경우 하이퍼인플레(hyperinflation)로 진행하게 된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금리를 화폐가치 하락률 이상으로 올려야 하는데, 그 결과 금리는 r₂에서 r₃로 급등하게 된다(d점). 금리를 낮추기 위해 화폐 공급량을 늘렸는데, 오히려 금리가 급등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보통 금리를 낮추기 위해 화폐 공급을 늘리게 되는데, 위에서 설명을 했듯이, 화폐 공급이 일정한 한계점을 지나면, 금리는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급등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금리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화폐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고, 늘려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것이다.
[11] 화폐가 가지고 있는 이런 특성 때문에 화폐공급량을 무한히 가져갈 수 없다. 그리고 일정 시기가 지나면 풀린 돈을 다시 흡수하는 출구 전략을 반드시 채택해야 한다. 출구전략을 제때 사용하지 않으면 화폐가치가 급락하면서 물가는 통제 불능 사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것을 실제로 겪고 있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베네수엘라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수출이 전체 수출의 9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국가이다.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 이상일 때는 경기가 좋았지만, 국제 원유가격이 2014년 말부터 급락하기 시작해 50달러 아래로까지 떨어지자 바로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베네수엘라 정부의 재정이 급속하게 줄어든 것인데,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 부족한 재정을 채권을 발행하거나 해 조달하지 않고 자국 화폐인 볼리바르화를 신규 발행하는 방식으로 조달했다. 볼리바르화의 가치는 바로 폭락하기 시작했고, 물가는 급등하기 시작했다.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급락할 때 적절한 시기에 금리를 인상해야 했지만 베네수엘라는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을 우려해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췄다. 결국 볼리바르화의 가치는 통제 불능상태에 빠졌고 베네수엘라의 물가는 1년에 수백%씩 올랐다. 2016년 베네수엘라의 물가상승률은 700%에 달했고 2017년에는 1,66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었다. 4,000원짜리 커피 한 잔이 1년 후에는 32,000원이 되고, 또 1년이 지난 후에는 563,000원이 되는 것이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 56만원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생활은 어떻겠는가? 문제는 커피 한 잔 가격만 이렇게 오른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화폐가치의 하락은 모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끌어올린다. 당연히 월급으로 생활하는 급여생활자나 현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손해를 보았다. 시장에서는 물건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씻고 먹고 마시는 가장 기초적인 생활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12]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베네수엘라 정부가 뒤늦게 금리 인상에 나섰지만, 금리를 수백 %씩 인상할 수는 없다. 2017년 현재 베네수엘라의 금리는 22% 수준에 머물러 있다. 700% 이상인 물가상승률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다. 이것은 현재로써는 베네수엘라 정부가 화폐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도 베네수엘라는 화폐가치 급락과 물가 급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볼리바르화의 가치가 계속 급락하여 기존 최고액이었던 100볼리바르화로는 거의 거래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베네수엘라 정부는 2016년 12월에 500, 1,000, 2,000, 5,000, 10,000, 20,000 볼리바르 단위의 화폐를 신규 발행했다. 예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짐바브웨에서 일어났던 일이 지금 다시 베네수엘라에서 반복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볼리바르화의 가치 하락은 계속 되고 있고, 일부에서는 금액이 아니라 볼리바르화의 무게로 거래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 모두 금리가 화폐가치 하락률보다 낮아 일어난 일이다.
[13] 그것이 달러든, 엔화이든, 유로화든, 위안화든, 화폐 공급량이 통제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늘어나면,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난 일이 그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양적완화를 실시했다면 시장에서 해당 화폐의 가치를 의심하기 전에 풀린 화폐를 다시 걷어들이는 출구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출구전략을 채택한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었다. 아직까지 출구전략을 채택하지 않고 있는 일본은행이나 유럽중앙은행 역시도 언젠가는 양적완화를 중단해야 한다. 무한정 엔화나 유로화를 시중에 공급할 수는 없다. 시장에서 엔화와 유로화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하기 전에 출구전략으로 돌아서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엔화와 유로화 모두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만약 유럽중앙은행이나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을 계속 늦춘다면, 이것은 경제 상황이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문제보다 훨씬 나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시그널이 될 수도 있다. 화폐가치 하락보다 더 큰 경제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유럽중앙은행이나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으로 돌아선다면, 연준이 했던 것처럼 양적완화를 점차 줄여 최종적으로 중단하고 그 이후 일정 시기가 지나 금리를 인상하는 경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14] 일부에서는 미국이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이 출구전략을 사용하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달러 가치의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준은 양적완화를 중단한 이후에도 금리를 빠르게 올리지 않고 최대한 늦추었다. 미국 경제가 활황이라면 지금 인상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금리를 인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10월 양적완화를 중단한 이후 곧바로 금리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을 깨고, 연준은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까지 금리를 인상할 듯 인상할 듯 하면서 올리지 않았다. 연준이 실제 금리 인상에 나선 것은 양적완화가 종료된 지 1년 이상이 지난 2015년 12월이었다. 이때 연준은 0.00~0.25%이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해 0.25~0.50%로 조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1년 이상이 지난 2016년 12월에 다시 0.25%포인트를 인상해 0.50~0.75%로 조정하였다. 연준의 움직임은 ‘베이비 스텝’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시장의 예상보다 느렸다.
[15] 미국은 일단 성공적으로 출구전략으로 돌아섰다. 문제는 일본과 유럽이다. 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이 출구전략으로 돌아선다는 시그널을 조금씩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과연 이들 중앙은행들이 실제로 출구전략에 나설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일본이나 유럽 경기가 출구전략을 채택할 만큼 호전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구전략을 서둘러 채택하게 되면 시장이 다시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고, 너무 늦게 출구전략을 채택하게 되면 화폐가치가 의심받을 수 있다. 그만큼 양적완화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중단하는 것도 시작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16]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물가가 안정돼 있었던 것이 큰 기여를 했다. 경기가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물가가 급등했다면 연준은 서둘러 금리를 인상해야 했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해외에 나가있던 자금들이 미국으로 회귀하면서 많은 국가들이 급격한 금리 인상과 함께 외환위기를 겪었을 수도 있다. 미국이 2년여에 걸쳐 0.5% 포인트 인상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 이상 빠른 속도로 인상했다면 더 많은 나라들이 위기를 겪었을 것이다. 하지만 물가는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였다.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던 국제 유가는 30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가 50달러 수준까지 회복했지만 여전히 최고가 대비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달러의 대체재 역할을 하는 금값 역시도 온스당 1,900달러까지 상승했다가 1,200달러 수준에서 안정을 찾고 있고, 국제 곡물가격 역시도 큰 가격 상승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물가 때문에 금리를 인상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고 있고, 따라서 금리 인상 속도를 최대한 늦출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17]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하면 부채 많은 국가와 개인 및 가계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부채 붕괴는 생각보다 빠르게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2016년 말 가계부채는 1,300조원을 넘어섰고, 기업대출도 745조원 정도 된다. 금리 인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유럽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최대한 금리는 늦게 오를 필요가 있고 오르더라도 적게 올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가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안정돼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인위적으로라도 물가를 잡아야 한다. 조작을 통해서라도 금값을 떨어뜨려야 하고, 이란을 끌어들여서라도 유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래야만 금리 인상을 최대한 늦출 수가 있고, 금리가 인상되지 않아야 부채 폭탄이 터지지 않고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며 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18] 앞으로도 계속 저물가가 유지되면서 화폐가치 하락하지 않는다면, 금리는 계속 낮은 수준에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현재와 같은 제로 금리 혹은 저금리는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들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금리가 본격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하면, 연준을 포함한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아무리 올리고 싶지 않다고 하더라도 금리를 올려야 한다. 부채 폭탄이 터지게 되는 되는 것이다. 연준이 왜 물가상승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연준이 아무 이유도 없이 물가상승률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경기 회복 여부로 판단하느라 고용, 실업률 등을 살핀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가, 금값, 곡물가 등을 눈여겨 봐야 한다. 금리 인상 여부는 경기 회복속도보다 물가 상승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쩌면 연준을 비롯해, 주요국들의 중앙은행들은 지금 금리 인상을 최대한 억제할 목적으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9] 어떤 사람들은 왜 집값이 안 오르느냐, 금값이 왜 계속 떨어지느냐, 유가가 급락하는 바람에 조선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빠르게 올라야 하지 않겠냐, 사람들 살기 힘든데 최저임금을 시간당 10,000원 이상으로 올려야 하지 않겠는냐,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한다. 당장 눈 앞의 상황이 어려우니까 이런 이야기들을 한다.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 가운데 집값이 오르고, 금값이 오르고, 임금이 오르고, 유가가 오르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물가가 최대한 낮게 유지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것이 위기가 다가오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초안 작성: 2014. 08. 10] [제1차 수정: 2017.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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